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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Doctor's Music Box/Music Essay

무진년(戊辰年)

by Mr.Doctor 2024. 7. 27.

정태춘 - 얘기2

파리 올림픽이 시작한단다.
언제부터인지 올림픽 소식에 그리 눈길이 가지 않는다.
물론 국가대표 선수들이 선전하고 메달을 따면 기분 좋고 박수를 보내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승패나 결과보다 최선을 다하는 선수에게 보내는 응원으로 무게중심이 옮기지 않았나 싶다.
한국의 메달 갯수나 색깔, 순위도 신문에 실리지 않는 시대다.
많이 변했다. 

'88 서울 올림픽에서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Hand in Hand)가 주제곡으로 쓰였다.
평화와 화합을 의미로 적절했지만 그 시절 정말 많이 틀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눈 뜨고 잠들 때까지 하루종일 TV, 라디오, 길거리에서 흘러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음반은 정태춘.박은옥의 '무진 새 노래'였다.
(덕분에 1988년이 무진년(戊辰年)이었음을 기억한다.)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 <시인의 마을>과는 결이 달라 어리둥절했지만 작가의 세계관과 목소리가 뚜렷하게 담긴 작품이라 통쾌했다.
또, 꽹과리, 북, 피리 등 국악기를 적극 활용한 점도 돋보였다.
어린 마음에 '이건 한국적 프로그레시브 포크'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 음반에서는 문학적인 가사가 돋보였다.
한곡 한곡이 수필같기도 하고 한편의 단편소설을 듣는 것같아 인상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얘기2>가 좋았다.
'궂은밤 동구밖 도깨비 씨름터', '추위에 갈라진 어머님 손잔등', '호남선 지나는 김제벌 까마귀', '노을빛 뜨거운 서해안 간척지', '지식의 시장에 늘어선 젊은이', '영웅이 부르는 압제의 노래', '양심을 지키는 가난한 이웃', '민족의 재통일을'.
슬쩍슬쩍 스치는 이 땅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한 편의 로드 무비를 떠올리게 했다. 

쓰다보니 도라지 한 개피 피며 듣던 쌍팔년도가 생각난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 참...

 

저 들 밭에 뛰놀던 어린 시절
생각도 없이 나는 자랐네
봄 여름 갈 겨울 꿈도 없이 크며
어린 마음뿐으로 나는 보았네
도두리(悼頭里) 봄 들판 사나운 흙바람
장다리 꽃 피어있는 학교길 보리밭
둔포장(屯浦場) 취하는 옥수수 막걸리
밤 깊은 노성리(老城里) 성황당 돌무덤
달 밝은 추석날 얼근한 농악대
궂은 밤 동구밖 도깨비 씨름터
배고픈 겨울밤 뒷동네 굿거리
추위에 갈라진 어머님 손잔등을

이 땅이 좁다고 느끼던 시절
방랑자처럼 나는 떠다녔네
이리로 저리로 목적지 없이 
고단한 밤 꿈속처럼 나는 보았네
낙동강 하구의 심란한 갈대 숲
희뿌연 안개가 감추는 다도해
호남선 지나는 김제벌 까마귀
뱃놀이 양산도 설레는 강마을
뻐꾸기 메아리 산골의 오두막
돌멩이 구르는 험준한 산 계곡
노을 빛 뜨거운 서해안 간척지
내 민족 허리를 자르는 휴전선을

주변의 모든 것에 눈뜨던 시절
진실을 알고자 난 헤매였네
귀를 열고, 눈을 똑바로 뜨고
어설프게나마 나는 듣고 보았네
서울로 서울로 모이는 군중들
지식의 시장에 늘어선 젊은이
예배당 가득히 넘치는 찬미와
정거장마다엔 떠나는 사람들
영웅이 부르는 압제의 노래와
젖은 논 벼 베는 농부의 발자욱
빛 바랜 병풍과 무너진 성황당
내 겨레 고난의 반도땅 속앓이를

얼마 안 있어 이제 내 애도 낳고
그에게 해 줄 말은 무언가
이제까지도 눈에 잘 안 띄고
귀하고 듣기 어려웠던 얘기들
아직도 풋풋한 바보네 인심과
양심을 지키는 가난한 이웃들
환인의 나라와 비류의 역사
험난한 역경 속 이어온 문화를
총명한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과
당당한 조국의 새로운 미래를
깨었는 백성의 넘치는 기상과
한 뜻의 노래와 민족의 재통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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