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10주기를 맞아 추모의 뜻으로 한 2주정도 그의 노래와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하루하루 글을 쓰며 그와 함께 참 많이 울고 웃으며 한 시절을 보냈구나 싶다.
올해 초 작고하신 김민기는 사표(師表)로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우고 키웠다면 신해철은 친구처럼 생각과 감정을 나누지 않았나 싶다.
물론 신해철과 개인적으로 만난적은 없다.
하지만 서강대 교정을 거닐며 이 즈음에서 담배를 피고 밥을 먹고 이런 풍경을 보았겠다는 짐작과 상상을 했다.
그를 추모하는 마지막 글로 <The Hero>를 골랐다.
이 곡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신해철의 가사와 다른 하나는 Queen의 Brian May를 연상시키는 김세황의 기타 솔로다.
먼저 이 곡은 어린 시절 만화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을 통해 영웅의 상을 그린다.
멋지게 악당을 때려 눕히고 어떤 어려움과 함정에도 굴하지 않고 일어서는 만화 속 영웅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 주인공은 이중생활을 해도 회사에서 짤리지 않고 돈 걱정도 없다.
머리도 뛰어나고 운동도 잘한다.
나와는 다른 존재이자 삶이다.
나도 저 주인공처럼 멋지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 마련이다.
매일 저녁 그 만화 안에선 언제나 정의가 이기는 세상과
죽지 않고 비굴하지 않은 나의 영웅이 하늘을 날았지
다시 돌아가고픈 내 기억 속의 완전한 세계여
분위기가 반전되며 시점은 어른이 된 나로 옮긴다.
그런데 이제 나의 영웅은 어린 시절 만화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니다.
록스타나 위인들로 바뀌었지만 말투를 따라하고 행동을 흉내내는 것은 어린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유치하다'는 말로 내게 영웅은 없는 듯 살아간다.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의 원인을 신해철은 꿈이 없어졌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꽤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영웅을 맘에 갖고 있어
유치하다고 말하는 건 더 이상의 꿈이 없어졌기 때문이야
그의 말투를 따라하며 그의 행동을 흉내내보기도 해
그가 가진 생각들과 그의 뒷모습을 맘 속에 새겨두고서
신해철이 남긴 수많은 노래 가운데 <The Hero>가 울림이 있는 이유는 바로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완전히 바보같은 일일 뿐이야"는 대목 때문이다.
이 곡의 하이라이트이기에 그의 보컬도 최고음을 내며 정점을 찍는다.
창작자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자, 가장 하고 싶은 말이라 힘을 주었다 할 수 있다.
한편, 이 구절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에서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수가 있어/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는 가사와 함께 자기 주장을 내세운, 90년대를 대표하는 가사이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 속한 모든 일은 너 자신을 믿는데서 시작하는 거야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완전히 바보같은 일일 뿐이야
마지막으로 김세황의 담백한 기타 솔로도 이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전 김세황의 기타는 화려한 Steve Vai풍이었으나 이 곡에서는 Brian May풍으로 선굵은 소리를 들려준다.
아마도 London Symphony Orchestra와 협연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이 대목은 조금 애매하다. 신해철은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이 앨범 녹음을 런던 심포니와 했다고 이야기 하지만 정작 앨범 크레딧에는 런던 심포니와 했다는 대목은 없다. 각 악기를 연주한 이들만 적고 있다.)
다만 편곡에 있어 초반 오케스트레이션은 과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현악을 빼고 피아노와 보컬로 단촐하고 소박하게 진행했으면 가사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로써 신해철 10주기 추모를 마무리하려 한다.
10년 후에도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80년대를, 90년대를, 2000년대를, 2010년대를 추억하고 반추하지 않을까 싶다.
고맙고 행복했다는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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