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Crimson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Starless>.
아내에게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곡"이라 했다가 잔뜩 지청구만 들었다.
워낙 유명한 곡이니 누군가 가사를 번역했겠지 싶어 검색하니 없다. 어떻게 이 곡이 없지?
내친김에 가사 전문을 해석해 남긴다.
Sundown dazzling day / Gold through my eyes
눈부신 하루의 일몰 / 황금빛이 내 눈을 비추네
But my eyes turned within only see / Starless and bible black
그러나 내 시선은 오로지 내면을 향한다 / 별 없는 밤과 칠흑같은 어둠이여
Old friend charity / Cruel twisted smile
오랜 친구의 관대함 / 잔인하게 뒤틀린 미소
And the smile signals emptiness for me / Starless and bible black
그리고 그 미소는 내게 공허함을 알려주네 / 별 없는 밤과 칠흑같은 어둠이여
Ice blue silver sky / Fades into grey
얼음처럼 차가운 은빛 하늘 / 회색으로 사라지네
To a grey hope that all yearns to be / Starless and bible black
모두가 갈망하는 회색 희망 / 별 없는 밤과 칠흑같은 어둠이여
* bible black은 '칠흑같은 어둠' the darkest black을 뜻한다.
가사에서 마지막 대목 해석이 난해하다. 바로 grey 회색이 주는 어감 때문이다. grey를 중립으로 여길수도 있지만 이도저도 아니다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실제 grey를 검색하면 '중립성, 적합성, 지루함, 불확실성, 노년기, 무관심, 겸허함'을 뜻하기도 하고 '편안함, 성숙함, 차분함'을 뜻하기도 한다. 고정된 의미가 없다.
마지막 대목을 의역하면 '얼음처럼 차가운 은빛 하늘이 회색으로 사라지고 이는 모든이가 갈망하는 회색 희망이다'로 거칠게 해석할 수는 있으나 여기서 회색 희망 a grey hope이 어떤 의미인지 뚜렷하지 않다.
가사의 문맥으로 추론하면 황금빛 일몰이 내 눈을 비추지만 내 시선은 그 황홀함을 좇지 않고 내면을 향하며 오랜 친구의 관대함과 잔인하게 뒤틀린 미소가 대조를 이룬 점을 보면 silver와 grey 역시 대조를 의도했을 듯싶다. 일반적으로 구름사이로 비치는 silver lining이 희망과 낙관을 상징하기에 silver는 긍정을 상징하는 반면 a grey hope은 그 반대인 hopeless 의미를 떠올릴 수 있다.
Morse/Portnoy/George가 남긴 <Starless> 해석을 참조하면 a grey hope은 공허감을 극복하려는 갈망이 줄어들거나 그 욕망이 억압된 상황으로 설명하며 회색을 희망의 상실, hopeless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a grey hope에서 hope은 희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좌절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The "gray hope that all yearns to be" implies the presence of a diminished longing, a subdued desire for meaning and fulfillment that struggles against the prevailing emptiness.
"gray hope that all yearns to be"는 만연한 공허감에 맞서 싸우려는 의도와 성취가 억압되거나 줄어든다는 의미다.
여기서 곡명인 starless를 생각하면 작자의 의도가 더 명확해진다.
주지하듯이 star는 동경, 희망 등을 상징하지만 starless는 그것이 없는 상태다. 그것도 칠흑같은 어둠이 내린 세상이라면 얼마나 불안하고 답답하겠나?
King Crimson은 starless이자 bible black에 놓인 존재에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군가? 희망은 있는가?
듣는이에 따라 달리 해석되겠지만 내게 초반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멜로트론 소리는 공허감을 극복하려는 내면의 투쟁이자 그것의 소멸로 들린다.
쓸떼없는 현학이라 비난할 수 있다. 그런데 인류에게 이런 곡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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