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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혁의 음악세계/이탈리안 아트록 특선

[96 이탈리아 아트록 특선] 51. Pierrot Lunaire - Gudrun

by Mr.Doctor 2017. 1. 22.

[1996 이탈리아 아트록 특선] 51. Pierrot Lunaire - Gudrun 

[1989] 13. Pierrot Lunaire - Gudrun


Pierrot Lunaire - Gudrun ('76, 2nd) 

1. Gudrun [11:27] 
2. Dietro il silenzio [2:35] 
3. Plaisir d'amour [4:43] 
4. Gallia [2:11] 
5. Giovane madre [3:47] 
6. Sonde in profondit [3:33] 
7. Morella [5:01] 

Arturo Stalteri - piano, organ, spinet, cembalo, synth, Glockenspiel, acoustic guitar, recorder, tambourine, violin 
Gaio Chiocchio - electric & acoustic guitar, mandoline, harpsicord, synth, Shaj Baja, zither tirolese, sitar, bell 
Jacqueline Darby - voice 
Massimo Buzz - drums on 5,7,8 



PIERROT LUNAIRE - Gudrun 

GUDRUN 필자가 프로그레시브록을 처음 접하였을 당시 소위 ‘프로그레시브록’이라고 하면 키보드 사운드가 많이 들어간 실험적인 음악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따라서 요즈음 아트록으로 통용되는 많은 부류의 음악들, 예로 브리티쉬 하드록이나 포크록 등은 프로그레시브록에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독일의 아방가르드록이나 전자음악, 혹은 명상음악들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핑크 플로이드나 킹 크림즌 등의 수퍼 그룹들을 제외한다면). 이러한 시기가 지난 후 언제부터인가 이탈리안록이 거의 프로그레시브록의 전부인냥 행세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뉴트롤즈를 시발로 반코와 R.D.M., Q.V.L., 등… 이러한 경향은 사실 일본의 경우와 매우 흡사한 양상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70년대 말 탁월한 진보음악 전문 잡지 ‘Fool’s Mate’를 중심으로 독일의 전위록과 전자음악, 그리고 영국의 실험음악들이 일본 아트록 매니어들 사이에서 풍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80년대 초, 일본 King 레이블을 통해 재발이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이탈리안록은 서서히 일본 아트록 매니어들 사이에서 붐을 형성하기에 이른다(물론 이전에도 광적인 매니어들 사이에서는 이탈리안록이 상당한 인기였지만 대부분의 오리지날 음반이 상당한 고가로 일반적인 매니어가 그 음반을 사서 청취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튼 이탈리안 록이 국내 음악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었음에 틀림 없지만 이러한 와중에서 부작용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현악기 연주가 포함된 서정적인 사운드에만의 편식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사람의 귀라는 것은 매우 간사한 것이라서 달콤한 것에 한번 익숙해지면 그밖의 다른 ‘쓴’ 소리에는 아예 접근하려 하질 않는다. 누가 무어라 해도 필자는 예술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 중 하나이다. 예술은 작가와 그의 작품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감상자가 개입된다. 작가-작품-감상자의 삼각관계의 일정한 균형과 긴장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술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로서의 ‘효용성’(‘실용적’이라는 의미가 아님)은 사라지고 말며 변증법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감상자 나름대로의 훈련과 노력은 한 시대의 예술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며 이것은 예술에 대한 일종의 예의이며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우리나라의 총체적인 문제점은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결핍된 사회라는 데서 출발한다). 사실 내지를 쓰는 이 순간, 단지 ‘서정적이고 달콤한 것, 혹은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재고로 창고에 쓸쓸히 처박혀 있는, 하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춘 여러 작품들이 필자의 눈 앞을 지나간다. 진정 예술적인(Art), 진보적인(progressive) 록(Rock) 음악의 보급을 시도하기 전에 ‘구입자의 귀에 맞을 것인가 그들에게 그다지 달콤하지는 않을텐데…’라고 재고해야만 하는 보급자의 굴욕감을 음반을 구입하는 많은 분들이 아실지 모르겠다. 

이탈리안 아트록의 이단들 
이탈리안 아트록이라고 하면 서정적인 클레시컬 록이나 심포닉 록 혹은 하드록만을 연상하실 분이 많이 계실것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이러한 통례에서 벗어나는 실험적인 작가들도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와 현대를 넘어 아트록의 새로운 인식을 제시한 Opus Avantra, 민속적인 것과 재즈, 그리고 공격적이나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작품을 선사하였던 Area, 정치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다는 기치하에 자본주의의 예술산업에 반기를 든 저항파 록(R.I.O-Rock In Opposition) 집단의 멤버 Stormy Six, 실험에 깃든 여유와 유모어를 ‘실험’한 Picchio Dal Pozzo, 이탈리안 전자 음악의 가능성을 보여준 Sangiuliano 등… 모두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춘 진보적인 록 음악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많은 청자들 사이에서는 ‘어렵다’ 혹은 ‘귀에 잘 들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냉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예로 국내에서 라이센스화 되었지만 심한 모멸감을 맛보았던 Picchio Dal Pozzo의 작품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한장이라도 더 보내달라고 아우성이었다는 이 기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외국의 예를 든다는 것 자체가 필자 자신도 매우 마음 내키지 않는 것이지만 이것만은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보급자는 이 ‘천민 자본주의’를 상대로 의미 있는 모험을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 도구는 바로 실험적 이탈리안 아트록의 꽃 Pierro Lunaire의 「Gudrun」이다. 

17세의 천재소년 Arturo Stalteri가 결성한 그룹 Pierrot Lunaire 
12음 기법으로 모더니즘 음악의 시대를 연 작곡가 쇤베르크의 작품명을 그룹명으로 한 Pierrot Lunaire. 10년간 저명한 연주가로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정식으로 공부한 그가 이 그룹을 결성한 것은 그의 나이 겨우 17세때의 일이었다(사실 그가 처음 록 그룹에서 활동한 것은 이보다 더 전인 1971년, 하드록 그룹인 Printemp에서이며 당시 그의 포지션은 오르간과 기타였다). 그는 키보드를 담당했고 기타는 Gaio Chiocchio가, 그리고 베이스, 드럼은 Vincenzo Caporaletti가 연주하는 3인조 구성이었던 이들은 그룹이 결성된 해 바로 첫번째 작품인 「Pierrot Lunaire」를 RCA 산하 IT 레이블에서 발표한다. 이태리 특유의 정서(햇살 가득한 해변과 하얀집들…)를 포크와 전통 음악 그리고 현대적인 감각에 실어 만든 이 작품은 데뷰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깔끔함과 풍부한 감성, 그리고 실험으로 가득찬 걸작이었다(많은 이탈리안록 그룹들의 데뷰작이 얼마나 어색한 오버 센스로 가득찬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필자 개인적으로 너무나 사랑하는 이 앨범 중에서도 특히 Arturo가 작곡한 ‘La Saga Della Primavera’는 17세때 작곡한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진지함과 아름다움이 넘쳐흐른다. 3분 35초가 너무나 짧게 느껴지는 기타와 보컬, 그리고 피아노 소리가 지금 필자의 방에서 네번째 울려 퍼지고 있다(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 함께 라이센스화된 이 데뷰작을 아직 들어보시지 않은 분이 계시면 꼭 구해서 들어보시길 강력히 권유한다). 

데뷰작이 발표된 후 Vicenzo Caporaletti는 그룹을 탈퇴하고 그 대신 여성 보컬리스트 Jaqueline Darby를 가입시킨 Arturo와 Gaio는 즉시 새 앨범에 대한 구상을 시작한다. 작품의 컨셉트가 거의 완성되었을 무렵인 75년, 그들은 커다란 장애를 맞이하게 된다. 그들의 데뷰작을 발표해준 IT 레이블의 방침이 상업적인 것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끈질긴 그들의 설득에 못이긴 IT 레이블은 결국 2년후인 77년, 지금 이자리의 주인공인 작품 「Gudrun」의 발매를 허락한다. 북구신화 ‘Saga’ 중에 등장하는 ‘Gudrun’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앨범 동명 타이틀 곡으로 시작된다. 브라이언 에노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전자 음향이 잠시 지나가면 여성 스켓이 울려 퍼진다. 바로 새로 가입한 Jaqueline의 목소리인 것이다. 이어 Gaio의 쳄발로와 Arturo의 전자 키보드가 시작되면 많은 분들이 이미 이 작품이 범상치 않은 작품임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여러가지 악기의 소리가 전통과 현대를 가로지르며 시간이동을 하고 있을 무렵 아마도 많은 분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느끼셨을 것이다. 바로 탈시간성과 탈공간성에 기초한 이런 무질서한 음향속에 지극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음을!! 자신의 ‘미’개념을 변경하지 않는다 할지라고 열린 귀를 가지고 들려 오는 음향에 자신의 감각과 의식을 맡긴다면 소리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전해주는 소리에는 뻐길려고 하는 것이나 듣는 이를 기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순수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무질서한 음향에 존재하는 지극한 자연스러움이여! 하지만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첫곡에 이어 (사랑의 기쁨(Plasir D’amour))의 우아함은 전자 노이즈와 함께 일그러지지만 거드름 피우는듯 했던 그 우아함은 노이즈에 의한 파괴로 오히려 더욱 순수한 우아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성악을 전공한 그녀다운 고음의 보컬이 귀를 자극하는 날카로운 전자 음향과 함께 놀랍도록 절묘한 앙상블(바로 ‘부조화의 앙상블’이다)을 들려주는 (Gallia). 이어서 이 작품이 록 음악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리듬과 키보드로 시작되는 (Giovane Madre), 하지만 이 작품의 탈시간성은 이러한 전개가 계속 이어지리라는 얄팍한 청자의 예상을 철저히 거부한다. 다시 구상처리로 시작되는 (Sonde In Profondit), 제목이 암시하듯 바다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건반 소리와 함께 실제 파도 소리가 지나간다. (Morella)에서는 드뷔시의 피아노곡을 매우 좋아했던 Arturo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이 Jaquelline의 광기로 가득찬 목소리와 함께 여러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어리석은 바보들의 합창과 함께 이 앨범중 가장 강렬한 리듬과 연주, 그리고 Jaquelline의 독일어 보컬이 인상적인 (Mein Armer Italiener)로 이 앨범은 끝을 맺는다. 

다양한 상상력을 가능케 하는 전통과 현대의 접목, 그리고 때로는 모자이크 형태로 때로는 중복시키거나 한쪽이 다른 한쪽을 파괴하는 무질서 음향은 이 시대 나약한 청자의 귀를 다시금 환기시킨다. 진정한 음악의 아름다움은 조화나 질서보다 무질서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그 무질서가 당신의 귀에 질서로 들릴 때쯤이면 다른 작가들은 다른 형태로 새로운 무질서의 질서를 제시할 것이다. 이쯤되면 당신은 작가의 ‘예의’에 그야말로 ‘예의’로 보답한 것이었으며 그 예술 작품의 방관자가 아닌 당당한 참여자로서 그 역할을 잘 수행한 것이었음을 이야기 하고 싶다. 예술 작품 감상의 진정한 기쁨은 이런데 있는 것이 아닐까? 

P.S.: 「Gudrun」 이후 
아쉽게도 이 작품 이후 그들은 해산하고 말지만 이들이 당시에 구축한 새로운 음악의 두가지 요소(전자음향으로 대표되는 현대와 민속적인 것으로 대표되는 전통)는 고스란히 분리되어(하지만 실험적이라는 점은 공통으로) 계속 이어지게 된다. 하나는 Arturo의 솔로 앨범 「Andre Sulla Luna」이며 다른 하나는 Gaio와 Jaquelline가 참여하였으며 독일 여성 Key Hoffman이 이끌었던 프로젝트 그룹 Floret Silva의 유일한 작품이다(이 작품은 78년에 완성되었지만 원래 발매가 예정되어 있었던 IT 레이블의 거절로 빛을 보지 못하다가 7년이 지난 85년 먼 이국땅 일본에서 아트록 잡지 Marquee산하 Belle Antique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다. 이 작품 역시 필자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작품으로 중세 음악의 현대적 해석과 Pierrot Lunaire 시절과는 또 다른 Jaquelline의 보컬이 상당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Jaquelline는 계속 음악을 공부하러 런던으로 건너가고 Arturo는 이후 몇장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였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활동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85년에 자신만의 클래식 피아노 콘서트에서 연주했다는 이야기만이 지난 자료를 통해 전해질뿐이다. 글/ 전정기 (http://www.siw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