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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혁의 음악세계/연도별 애청곡 100선

[89] 62. Gracious - Heaven

by Mr.Doctor 2010. 5. 28.

[1989] 62. Gracious - Heaven

Gracious - Gracious ('70, 1st) 

1. Introducrion
2. Heaven
3. Hell
4. Fugue in `D`minor
5. The dream











GRACIOUS - Gracious
 
격정과 섬세함, 그리고 과거와 현재
지나간 시절과 빛 바랜 사진은 언제나 아름다와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배부르고 풍요로운 지금의 호사적 취미일까? 서투른 몸짓, 그리고 순수하고 격정적인 그들의 외침은 그야말로 빛바랜 사진과 같은 것이 되고 말았지만 아직까지 우리 가슴 속에 한줌 남은 순수, 사랑, 그리고 지성의 조그만 불씨를 다시 한번 지피려 한다. 바로 브리티쉬 록, Gracious다.

Gracious가 결성된 1968년, 당시의 팝 음악은 비틀즈를 위시로 하여 점점 세기말적 증후군을 나타내고 있었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었고 친구나 애인과의 사이는 노랫말처럼 항상 행복하고 설레이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뜻있는 대중 음악가들은 진실을, 아니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을 이야기 하기엔 이 세상은 너무나 허위로 가득했다. 더구나 그들 나름대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대중음악은 사탕같이 달콤한 멜로디와 자극적인 리듬으로 이 더러운 세상에 항거하려는 이들의 힘을 빨아 먹었고 대중들 주머니 속의 돈을 빼았아 갔다. 이제 음악은 순수의 상징도, 아름다움도 아닌 단지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허위의식 조작의 첨병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중음악은 근본적인 치료를 필요로 했지만 '작가는 죽었다' 는 미셀 푸코(Michel Foucault)의 언명처럼, 작가가 독립된 자기로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작가들 자신도 그것을 괴 로워하였다. 많은 대중음악 작가들은 현실의 '자기 부재' 를 극복하기 위해 마약의 힘을 빌리거나 신비주의에 몰입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결과적으로 작가나 그 작품에게 파멸을 가져 왔다. 이러한 '작가 상실' 의 시대에 등장한 것이 혼합 변종(Hybrid)음악이다. 몇몇 작가들은 그들의 목소리가 자신만의 목소리가 아닌 과거와 현재를 통하는 수많은 '천의 목소리'임을 깨 달았다.

그들은 자기 존재가 상실되어 버린 이 세계를 인정하고, 또 한편으로는 저주하면서 과거와 현재속 타인의 음악을 모자이크처럼 짜맞추어 변종시켰다. 변종 음악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 세계에는 영속적으로 세상이나 인간에게 적용 가능한 어떠한 지배종도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이 있을 경우 그것은 곧 권력(Power)을 의미한다는 것을 폭로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기존의 것을 복합 구성하여 기존의 것이 가지지 못한 의미를 작가의 의지와 청자의 관념속에서 재생산하여 소위 창작 이라는 것과 그 속에 담긴 예술관이란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이야기 한다.

더우기 이러한 작업에 사용되는 방법론이 록이라는, 비트를 중시하는 자극적인 음악일 경우 그 효과는 더욱 증폭된다. 하지만 이러한 변종은 많은 경우 실패를 가져왔는데 그중 하나는 전 체가 변종하려하는 한 종의 음악에 종속되어 결과적으로 혼합 변종이 가지는 의미를 상실한 경 우이며 또다른 하나는 대중의 감각에 기초하지 못한 조악한 구조의 변종으로 효과의 측면에서 실패하는 경우이다. 또한 이러한 작업이 이전의 상태와 단절될 수 있는 충분한 거리를 갖지 못 할 경우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충분히 경계하기란 사실상 어려 운 것이기 때문에 많은 작품들은 결국 방향을 잡지 못하고 실패를 맛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변종음악 본연의 힘을 유지하면서 대중의 감성을 위배하지 않는, 오히려 기존의 것보다 훨씬 더 창조적이고 대중적으로 아름답게 승화된 작품이 있다. 바로 Gracious의 작품이다. 1970년대 영국, 실력과 독창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빛을 보지 못하였던 많은 언더그라운드계 밴드중에서도 Gracious의 경우는 특히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그들의 작품이 동시대 타 그룹들의 작품에 비해서 월등하게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그룹은 1968년 결성된 후 Polydol에 서 싱글 'Once On A Windy Day'를 발매하고, 동년, 당시 수퍼그룹이었던 The Who의 오프닝 밴드로 활동하다 본작인 앨범 'Gracious!('아뿔사', '저런' 등 놀람의 표현을 뜻함)'을 발표 한다. 당시 1969년에 설립된 진보적인 레이블 Vertigo(물론 메이저 레이블인 Phonogram의 이미지 관리를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를 통해 발매된 본작은 전술한 바와 같이 과거와 당시의 여러 음악들을 혼합 변종하고 있으면서도 경이롭다고 할 정도의 완성도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혼합 변종은 타협 혹은 새로운 시도를 위장한 또 다른 상업 전술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에 대한 합체와 재구성으로 과거/현재의 경계를 뛰어 넘고 더 나아가 자신만은 순수하다거나 진보적, 혹은 독립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소위 '창조된 작품들의 허위와 가식을 조롱한다. 그리고 현대의 작품이 오히려 중세나 고전보다도 더 보수적이거나 음흉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베토벤의 소나타가 나오는가 하면 오펜바하의 캉캉이 등장하기도 한다. 도어즈의 짐 모리슨이나 존 레논을 연상케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이번에는 더욱 더 노골적으로 비틀즈의 'Hey Jude'를 아주 처참하게 파괴한다. 프랑스 그룹 Visitors의 'Dies Irae' 를 연상케하는 암혹과 묵시록의 폭발적 음이 있는가 하면 꿈결을 거니는 듯한 멜로트론의 섬세한 음도 있다. 이러한 많은 것이 혼합 변종되었지만 이 작품이 진정 70년대 브리티쉬 록의 걸작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그들이 '음악적인 것'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위에 군림하기 보다는 다른 거짓 영웅들에 의해 군림 당하는 대중들을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이후 그들은 멜로트론음이 넘쳐흐르는 또 다른 수작 앨범 'This Is Graciou'를 제작 하지만 Vertigo는 경영상의 이유로 이 작품의 발매를 거절하고 이는 결국 모 회사인 Philips의 International 시리즈를 통해 발표된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해체하고 그 이후 단지 보컬리스트인 Paul Davis만이 'Jesus Christ Superstar의 게스트로 참가하는 정도로 그들의 불운한 역사는 끝난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두장의 명반은 이후 매니아들 사이에서 그 진가가 인정되어 현재 세계 시장에서 모두 고가에 거래되는 음반에 속해있다. 필자는 이 작품에 대해서만은 한곡 한곡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싶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다른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주관적 상상력과 영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막 이 걸작을 소유하게 된 청자들의 권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도 지금 이 내지를 읽으면서 본작을 감상하고 있는 여러분은 필자가 이 작품을 처음 들었을 때와 똑같은 감탄사를 내뱉고 있지 않나 싶다. Gracious! 글-전정기 (http://www.siw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