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3. 26-27 / 1st 앙콜 1989. 10. 20-21
IBIS - IBIS ('75, 3rd)
1. Premessa (전제) [2:00]
2. Narratio (서술) [7:30]
3. Dedicated To Janis Joplin [5:56]
4. Passa Il Tempo (시간이 흐르고) [3:47]
5. Ritrovarci Qui (우리가 다시 여기서 만나는 것은) [5:57]
6. Strada (길) [7:43]
7. Keep On Movin’ [5:05]
8. Noi (Japanese Only Bonus Track) [3:30]
Nico Di Palo - chitarra e voce (guitar & vocal)
Renzo Tortora - chitarra e voce (guitar & vocal)
Frank Laugelli - basso (bass)
Pasquale Venditto - batteria e voce (drum & vocal)
(Left to Right)
IBIS의 유작.... IBIS
IBIS의 탄생
1970년대초, 황금기를 맞게되는 Italian Progressive Rock계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작품들과 훌륭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수퍼그룹들 상호간의 창작에 대한 불같은 경쟁심과 더불어, 의욕에 넘치는 신생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앞을 다투어 데뷔를 했기 때문이며, 연주자들 의 연주력 향상과 함께 악기와 스튜디오 장비의 현대화 그리고 음반제작자들과 대중들의 Progressive Rock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촉매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황금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그룹들이 한, 두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당시, 대부분의 그룹들은 음악성을 인정받고, 명성을 얻게 되면, 곧 해산해 버리곤 했다. 이러한 많은 그룹들의 단명이 아마도 이태리 Progressive Rock의 황금기를 단축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IBIS의 출현은 이태리의 화려했던 Progressive Rock의 황금기가 막을 내린 직후, 하나의 수퍼그룹이 분열되면 서 비롯되었다. IBIS가 탄생되는 과정은 이러한 이태리 Progressive Rock이 붕괴되는 과정을 그대로 반영시키고 있으며, 많은 진통과 가장 복잡한 스토리들을 담고 있다. 이태리 Progressive Rock계열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했었던 그룹 New Trolls는 Concerto Grosso Per I를 발표한 이래로 멤버들간의 갈등이 점차적으로 심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분열은 이태리 Progressive Rock의 절정기이며, 황금기의 마지막 해인 1973년에 들어서자 마자 표면화 되었지만, 그에 앞서 3년이라는 짧지않은 기간동안 그들 불화의 이야기는, 그들의 작품속에서 그리고 음악계의 소문으로 계속 이어져 왔었다.
New Trolls가 이태리 Rock계에 남긴 공적은 크게 두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1960년대말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태리 Rock을 질적으로 향상시켰다는 점(그들은 두번째 앨범부터 Concept라는 요소를 이태리 최초로 도입시켰다)이고
둘째, 영 -미국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했던 당시의 그룹과는 달리 이태리적인 독특한 음악을 탄생시켰다는 점이 바로 New Trolls가 이태리 Rock계에 남긴 빛나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업적은 그들의 분열로서 퇴색되었고 또한, 음악방향의 설정에 있어서도 영국그룹들을 모방하는 시행착오를 거듭함으로써 변색되었다. 그들의 음악적 시행착오는 팬들과 음악시장으로부터 "부적합"판정을 받았으며,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무덤을 파는 결과를 낳았다.
이 기간동안 그룹의 리더격이었던 Vittorio와 Nice는 그들의 음악적 마무리 작업에 착수, 두장의 앨범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 작품들이 바로 New Trolls의 암울하고 괴로웠던 기간을 상징하는 심볼이며 산물인 "Searching For A Land"와 "U'T"이다. 이 두 장의 앨범 제목들이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New Trolls멤버들은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륙(Land)즉, 새로운 음악을 찾기를 갈망했으며 또한 새로운 출발(UT:음계의 "도"를 의미)을 원했다. 그러나, Vittorio De Scalzi의 탈퇴로서 길고 복잡했던 New Trolls 위기가 결국 그룹의 해산으로 치닫게 되었고, 그는 초창기 New Trolls의 베이스주자였던 Giorgio D'Adamo와 함께 음악활동을 하면서 New Trolls라는 그룹명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이 시점에서 New Trolls라는 이름을 놓고 멤버들간에 굴욕적인 싸움들이 벌어 지기 시작한다. 이 상황은 마치 1980년대 Pink Floyd라는 그룹명을 놓고 Roger Waters와 또다른 세명의 멤버가 법쟁투쟁에까지 이르게 되는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모든 멤버들이 서로 New Trolls라는 그룹명을 내걸고 활동 하려는 과대한 욕심을 갖고 있었고, 논쟁을 거듭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내었다. 아뭏든, 여러차례의 크고 작은 논쟁후 Vittorio De Scalz와 Giorgio D'Adamcr가 그 전쟁으로부터 승리를 거두었으나, 소속회사였던 Fonit Cetra와 해결해야 될 또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룹명을 잃은 나머지 멤버들 Nice, Maurizio, Frank그리고 Gianni는 단순히 그들의 세레명을 내걸고 "Canti D'lnnocenza, Canti D'Esperanza" 라는 앨범을 제작했고 Vittorio는 그의 부친 Andre De Scalzi가 설립한 Magma레코드사(Fonit Cetra)로 부 터 N.T. Atomic System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제작했다. Nice가 이끄는 4인조 그룹은 탈-New Trolls와 음악적 혁신을 그들의 첫번째 목표로 내세웠으나, 그들의 작품속에는 여전히 New Trolls 음악적 잔해와 동질성이 남 아 있었다. 그후 Nico가 이끄는 그룹은 I Tritons라는 그룹명을 잠시 내걸고 Fonit Cetra로부터 싱글 Satisfaction을 발매, 조그만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Gianni가 Vittorio와 Giorgio와 합류하기 위하여 그룹을 탈퇴하자 Nico가 이끄는 그룹은 무기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드러머와 그들에게 어울리는 그룹명을 찾아 나서게 된다. Frank는 그의 이태리계 캐나다인 친구에게 드러머를 찾아줄 것을 부탁하면서 런던으로 향했다. 그의 런던행은 뜻밖의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에게 첫번째 드러머로 물망에 올랐던 드러머는 Jethro Tull 결성멤버였던 Cliver Bunker이 었지만 Cliver는 이미 자신의 그룹을 결성,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그와의 접촉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두번째로 점찍었던 Atomic Rooster 출신의 Rick Pamell과의 접촉은 성공적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Rick은 Atomic Rooster 이태리 순회공연에서 그룹의 해산이라는 불운을 겪고 런던으로 되돌아온 상태였다(Atomic Rooster가 이태리 순회공연을 행하고 있을 때, 그룹의 리더격이었던 Vincent Crane은 다른 멤버들을 속이고, 공연의 모든 수익금과 장비들을 실은 트럭을 챙겨 이태리를 도망쳐 나왔다.
결국 Rick과 Guitalist인 Steve Bolton은 무일푼으로 이태리에 남게 되었고, 그들은 돈을 벌기위해 이태리 수퍼그룹 Jumbo와 세션을 갖기도 했다. 잠시후 그들은 본국인 영국으로 되돌아 왔고, 이시점에서 Rick은 Frank를 만나게 된 것이다. Rick은 Frank의 제안을 받아들 였고 그의 드럼세트를 이태리로 가져왔다, Rick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높게 평가해 주는 이태리인들의 요청을 쉽게 수락하고 그들과의 새로운 음악적 모험을 만끽하고 싶어했다. Nico가 이끌고 있었던 I Tritons는 Rick이 합류 하기 직전 Polydor로 이적, 싱글과 같은 타이틀의 앨범을 한장 남겼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Gianni Belieno의 소속회사였던 Fonit Cetra와의 관계 때문에 Tritons의 유일한 앨범에는 멤버 전원의 이름이 가명으로 담겨져야 했다(gianni는 영어식 이름인 Johnny로 표기되었고 나머지 멤버들의 이름은 Rodhes, Spyder그리고 Cino등의 가 명으로 기입되었다). 따라서 I Tritons는 IBIS의 전신그룹으로서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그룹이었다. Tritons라는 그룹명으로 Polydor로 이적한 Nico와 Frank는 여전히 그들에게 잘 어울리는 그룹명을 찾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이태리 주간 음악지 Ciao 2001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적당한 그룹명을 적어 보내줄 것을 부탁하는 광 고를 게재한다. 그리고 얼마후 그들은 독자들이 적어 보내준 수많은 추천 그룹명중에서 암시적인 새(따오기과의 각종 조류를 뜻하는 IBIS라는 이름을 그룹명으로 채택했다.
IBIS의 표류
탄생과 함께 음악적 혁신을 첫번째 이슈로 내세웠던 IBIS는 그들의 창조공간으로서, 활동장소로서 조그만 도시 RImani를 선정했다, 그곳은 그들의 창작작업과 연습이 그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이상적인 보금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들은 여름과 겨울내내 그 곳에서 보낼 수 있었고, 오직 창작과 연습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조급하게 새로운 앨범을 제작하기에 이르렀을때는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무엇보다도 대중매체와 음악시장과의 오랜 단절 그리고 팬들로부터의 완전한 고립이 그들에게 음악적 방향판단에 있어서 커다란 혼동을 불러 일으켰고 또한 새로운 드러머와 멤머들간의 조화가 결코 쉽지가 않았다. Rick은 전형적인 이태리의 드러머들과는 스타일과 리듬감각에 있어서 현저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몸에 배어 있었던 습관적인 규칙들과 정통적인 스타일로부터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했다. 사실 10여년동안 틀에 박힌 영국적 스타일을 고수해 왔던 한 뮤지션의 음악적 스타일을 몇개월만에 다른나라 스타일로 완전히 바꾸어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아뭏든 수차례의 반복되는 리허설속에서, 그들은 어느정도 선에서 그들의 만들어진 작품에 대하여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적 조건이 점점 어려워져 갔고, 많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은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데뷰작 첫곡에 담긴 가사 'How can we wait'처럼 그들의 데뷔작은 이럴게 조급하고 불안정한 상태 에서 제작되어졌다.
IBIS의 음악적 원류로서 "작은 바하"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던 Maurizio Salvi의 키보드는 "스타일의 변화"라는 이유하나 때문에 데뷔작에서는 기대만큼 발휘되지 못했다. 하몬드 오르간, 두대의 신서사이저와 그랜드 피아노 그리고 멜로트론과 일렉트릭 피아노 등 여러 종류의 키보드군이 Minor 중시하는 경 향을 띠면서 별다른 활약을 해내지 못했다. 그보다는 새로 영입된 Rick Pamel의 정통적인 영국 스타일의 드러밍에 너무 많은 부분이 할애되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영국 스타일과 리듬으로 흘러가는 경향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오랜 솔로 경험으로 잘 다듬어진 Nico의 Guitar 연주도 이 앨범에서는 누그러져 있다. 그의 Guitar 연주에 버금가는 그의 훌륭한 보컬도 아름다운 화음이 배제된 상태에서 Rick의 보컬과 교차되고 있다.
당시Progressive Rock의 황금기가 끝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Symphony의 외관을 그대로 내세우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 주었고 또한 그들에게 익숙치 않은 영어가사로서 세계시장을 노리는 과대한 욕심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데뷔작 "Sun Supreme" 발표후 그들에게 가장 쓰라린 고통을 주었던 것은 그들 공연의 비참한 실패 였다. 물론, 기획팀의 홍 보에 대한 결핍이 가장 커다란 실패요인이었으며, 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엄청난 패배감을 안겨다 주었다, 그들의 순회공연이 끝나는 로마의 Piper극장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가는 곳마다 그들이 언제, 어디서 공연하는지 알고 있었던 그들의 팬들은 거의 없었다. 그들의 공연을 알리는 단 한장의 포스터도 만들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수의 관객을 모아놓고 행해진 그들의 연주도 이러한 상황속에서는 실력이 발휘될 수 없었고, 평론가들의 차가운 붓도 결코 그들의 실패를 용서하지 않았다.
IBIS의 활기찬 비행
1974년말 Rick Pamell 그룹을 떠났고, Maurizio Salvi도 음악적 견해차이로 그룹을 등졌다. 이러한 계속되는 절망속에서도 Nico와 Frank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72년 단 한장의 싱글을 남기고 사라진 4인조 그룹 Forum Livii출신의 Guitarist Renzo Torta와 Drummer Pasquale Venditto를 영입시켜 새로운 IBIS를 부화시킨 다.그들은 과거의 "세계음악시장 진출"이라는 과대한 욕심을 버리고, 이태리 국내시장만이라도 정복하기 위한 두번째 앨범 제작에 착수했다. 앨범전체가 영어가사로 되어 있었던 데뷔작과는 달리 그들의 두번째 앨범은 두곡만이 영어가사로 되어 있고 나머지곡들은 이태리 가사를 담고 있다. 데뷔앨범에서 보여 주었던 음악적 방향의 "불확실성"에서 탈피한 두번째 앨범 "IBIS"는 혹백으로 처리되었던 암울한 데뷰앨범 커버와는 달리 맑고 아름다운 커버로 장식되어 우선 구매자의 구매욕구를 부추겼다. 또한, 딱딱하게 느껴졌던 데뷰작의 그룹명 logo도 귀엽고 예쁜글씨로 바뀌었으며 어둡고 무거웠던 앨범안의 내용물(Sound)역시 웅장하고, 밝고 그리고 아름답게 변화되었다.
IBIS의 유작... IBIS
멤버들의 모습이 환상적으로 스케치되어 있는 아름다운 앨범커버, 그곳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진한 오렌지빛 향기때문에 우리들은 레코드샵의 윈도우에 진열된 이 앨범을 보고서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다. 일단, 이 앨범을 소유했을 때의 느낌은 안의 내응물이 어떻든간에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커버만으로도 커다란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당시 Art Rock계열, 특히 Progressive Rock계에 유행되었던 Gate Folded Cover(4 Page로서 펼쳐지는 커버)로 발매되지 않았다는 점이 약간의 아쉬움을 남길 뿐이다.
첫곡은 NicoDi Palo의 강한 Guitar 연주와 보컬이 주도하는 'Premessa(전제)라는 곡이다. "음악이 새로운 길을 열어줄때.... 우리들 모두 그 음악에 열중했지.... "라는 가사내용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앨범의 출발 곡으로서 그들의 새로운 음악적 의욕을 보여주고 있는 듯 싶다. 그러나, 미완성으로 끝나는 스타트 작품인 Premessa는 아직까지도 New Trolls와 영국적인 범주를 못벗어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두번째 곡은 Acoustic Guitar 연주로 차분히 다가오는 비교적 짜임새있는 작품 'Nanatio(서술)라는 곡으로, 중반부 부터는 분위기가 급변, 영국의 정통적인 Hard Rock을 연상시키는 연주가 계속된다. 이곡에서 NicoDi Palo,Renzo Tortora 그리고 Frank Laugelli, 이렇게 3인이 펼치는 Guitar Work은 마치 영국의 Hard Rock그룹 Budgie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만약 그대의 눈이 미와 무[無]를 볼 수 있다면 홀로 명상을 해보십시요....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곡은 외적으로 자기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여인들에게 철학적인 충고를 하고 있다.
세번째 곡은 Rock계의 여걸 Janis Joplin에게 바치는 'Dedicated to Janis Joplin'이라는 곡으로 시대적으로 뒤늦은 감은 있으나,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곡이다. "그대는 내 젊은 시절의 한 부분이었습니다...."라는 가사처럼 그녀는 그들이 한창 미 -영국의 음악을 모방하고, 배우고 있었을 때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여성 보컬리스트였다. 이 곡은 이태리인들로부터 흔히 들을 수 없는 Bob Seger와 같은 미국적인 Bluesy, Husky Vocal을 담고 있다. 'Dedicated to Janis Joplin'과 함께 싱글로 발표되어 IBIS에게 첫번째 성공을 안겨다 주었던 'Passa II Tempo(시간이 흐르고) '는 신선한 Twin Acoustic Guitar를 바탕으로 맑고 깨끗한 보컬과 코러스가 전개되는 전형적인 Italy Soft Rock 넘버이다. NicoDi Palo의 개성있는 보컬과 테이프로 역회전시킨 효과음이 이곡을 빛내주고 있 다.
Side 2의 첫곡은 1980년대초,국내 FM방송에서 공전의 Hit를 기록했던 IBIS불후의 명곡 'Ritrovarci Qui'이다. 곡의 구성, 연주력에 있어서 IBIS의 최고걸작이며 Italy Progressive Rock 역사에도 영원히 기록될 명곡이 다.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Acoustic Guitar 그리고 그위에 차분하게 수놓아지는 Nice의 보컬과 아름다운 멜로트론 연주가 다른 곳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독특한 음의 공간을 제공해 준다. Maurizio Salvi로부터 이어받은 두대의 멜로트론중 한대는 하늘로 날고, 또다른 한대는 넓은 대지로 퍼져 나가면서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곡의 변화를 알리면서 등장하는 Pasquale Venditto의 드러밍은 다른 음향에 비해 상대적으로 누그러져 있지만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있어서는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 Nico의 기교가 넘치는 Guitar 연주도 이곡에서는 십분 발휘되고 있다.
IBIS가 만들어 내었던 작품중에서 가장 완벽한 곡구성으로, 잠시도 귀를 뗄 수 없는 역작 'Ritrovarci Qui'가 생성되는데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엔지니어인 Nico Jorio의 놀라운 믹싱기술이다. 밀라노의 J.S.Bach스듀디오에서 그에 의해 녹음된 이곡의 치밀한 음의 배합은 매우 훌륭하다. "여러해를 보내고 나는 그대를 다시 만나게 되었군요... 나는 항상 내가 연주하는 음악만을 위해 살아왔답니다.... 열정을 가지고 기 타를 연주하곤 했지요.... 우리가 다시 여기서 만난다는 것은 슬픔만 줄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서로 각자의 길을 떠나기로 합시다.... 여러해 전에 그랬었던 것처럼.... " 이와같은 가사로 되어있는 'Ritrovarci Qui'는 곁을 떠나버린 사랑하는 여인에게 들려주는 뮤지션의 이별노래이다. 그러나, 이 곡은 옛 New Trolls의 멤버들 에게 보내는 Nico와 Frank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두번째 곡 'strada(길) '은 Pink Floyd에 영향을 받은 IBIS의 곡으로 데이빗 길모어의 슬라이드 기타주법을 연상시키는 기타 효과음과 더불어 전형적인 이태리뮤지션 특유의 보컬이 이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곡은 데뷔작에서 시도했었던 영국적인 British Rock으로 기울어진다, 즉흥적인 연주속에 잠시 등장하는 훌릇소리만큼은 감칠맛이 나지만 전체적으로 보컬이 약하고 불안정하다. 앞 곡과 비교가 되기 때문인지 매우 초라하게 느껴지는 곡이다.
마지막 곡 'Keep On Moving'도 앞곡 'Strada'만큼 실망감을 안겨다주는 곡이다. 뒷부분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소음들은 1960년대말 Free Jazz Rock 그룹들과 Avant Grade Rock 그룹들이 장난삼아 행했던 소음들을 연상시킨다. 그 소음들 속에서, 몇차례 울려 퍼지고 있는 괴성은 마치 'Whole Lotta Love'속에서 Robert Plant가 행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탄생되기까지 많은 시련과 고통을 당했던 IBIS. 데뷔작의 실패와 함께 대중들의 무관심속에 묻혀 있었던 IBIS.그러나, 그들이 두번째 앨범으로 비로소 하늘을 훨훨 날 수 있게 되었을 때, 핵심멤버인 Nico가 Vittorio와 화해하게 됨으로써 IBIS는 결국 추락하게 된다.
Nico는 새로 출발한 New Trolls에 합류했다. 글/성시완 (http://www.siw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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